yuna's lifelog


이 글은 yuna님의 2007년 12월 2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갤러리 뤼미에르를 나와 문득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1층에서는 '광주이씨 옛 종가宗家를 찾아서'라는 전시회의 개막일이라 (광주 이씨로 보이는)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손에 선물세트를 들고 곧 있을 개막식을 기다리고 계시었고, 분위기는 술렁술렁했다. 일단 상설 전시장인 3층으로 올라갔다.
지난번 중앙박물관 2층처럼 상설 전시장 쪽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장도, 누군가의 머리칼을 훑어갔을 참빗과 비녀, 빗치개, 머리장식들, 누군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을 가락지, 누군가의 코에 걸쳐져 있었을 안경, 안경집. 이런 것들을 상상하며 사람 없는 컴컴한 박물관을 누비는 것. 그게 좋아서 박물관을 좋아한다. 그 외에도 마음에 드는 것들이 많았는데.

  • 발의 자연스런 모양과는 거리가 먼 낡은 가죽신과 나막신들
  • 살은 없어지고 자루만 남은 부채
  • 두마리의 검은 나비가 그려진 부채
  • 함박웃음같이 둥글고 흰 조선 후기의 백자 달항아리
  • 시원스럽게 뻗어 올라간 백자 양각 시문명병
  • 18세기 심사정이 그린 깊은 산 속의 나그네 그림(이런 그림 하나 벽에 걸어놓으면 깊은 산 속을 헤매던 힘든 여정이 왠지 객관화되어 조금 안심스러웠을까? 라는 터무니 없는 생각)
  • 반질반질한 나전칠 빗접과 빨갛고 역시 반질반질한 주칠 빗접(장식은 인간의 본능인가 라는 생각)

이런 것들. 카메라를 안가져가서 사진은 못찍었다.
나중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 몇개.


박물관 뒤편으로 오후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간다.

과거 응시생들을 위한 서울 지도.
이것을 손에 꼭 쥐고 두근두근 과거를 보러 갔을 청년들.

일제와 해방 이후에 쓰이던 부의 상징인 전자 제품들.
이것은 독일산 전기난로라던가?

그것의 뒷모습.
그 외에도 미싱, 전기 화로, 선풍기, 시계 등
요즘의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빈티지 소품으로 팔릴 법한
굉장히 예쁜 물건들이 있다.

찬합. 이런 데 도시락 싸서 소풍가고 싶다.

상설 전시를 보는데만 두시간이 넘게 걸렸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기획 전시실에서 열린 광주 이씨 유물들을 구경했다. 이런저런 소품도 있었지만 거기엔 정말로 많은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먹을 찍어 붓으로 쓴 이 여러 문서들은 대개 정치와 관련된 문서나 편지, 일기, 그리고...


'도적을 잡았으나 도적맞은 물품을 찾지 못하였으니... 해달라'는
이런 내용의 '실용 문서'들이다.

이런 문서 하나에도 멋들어진 싸인에 붉은 도장이라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전시장 구석구석 베레모를 쓰고 선물 박스를 든 채 조용조용 걸어다니며 구경을 하는 멋쟁이 할아버지들을 보면서도 역시.

1층에서는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소규모 박물관들을 소개하고 소품을 판매하는 전시실도 있다.


그중 가장 탐났던 목각 인형(가격표를 보고 좌절-50마넌).
목인 박물관, 다음에 꼭 가봐야겄다.
- 원불교 역사박물관하고, 경보 화석박물관도.

이것은 이전에 갔었던 세계 장신구 박물관에서 판매중인 소품

뭐 보물 같은 게 꽉꽉 들어찬 박물관은 아니지만 전시물들은 목적에 충실하고 테마에 맞게 잘 분류되어 있으며, 시청각 안내 시스템도 잘 되어있다. 그리고 홍보 영상, 전시물을 이용한 게임이나 체험 코너 등도 꽤 충실하게 갖춰져있어서(그리고 관람료도 싸고. 700원 ^__^)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곳.


'돌이킬 수 없는'에 나온 것만 같은 세종로 지하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