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이 글은 yuna님의 미투데이 2007년 8월 14일 내용입니다.

'아니 모네의 그 주옥같은 그림들은 다 놔두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전시회. (몇년 전의 샤갈 전이 그랬던 것처럼)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노년기 작품들과 덜 유명한 작품들, 그리고 소품 위주의 구성, 그에 비해자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그리고 사람들이(특히 관람의 예의라곤 전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수선스러웠던 전시회장 분위기...

아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시회의 모든 그림이 다 대작이고 다 내맘에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실 나는 이런 전시회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한두점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해도 그 전시가 '참 좋았다'고 기억하곤 한다. 그리고 사실 이 전시회에서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려(!) 대여섯 개나 되었다.


La Seine a Port-Villez. 1889. 이미지는 여기서 가져옴.

이 전시에 나왔던 수련 연작도 그렇지만(기대하고 갔던 이 연작은 사실 실망이었다. 그 멋진 수련 작품들은 다 어디로 가고... -_-), 모네는 제목으로 여러 그림을 그렸고, 비슷한 그림들도 아주 많다. 그 중에서 이번에 온 작품들은 모두 지명도가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좋게 생각하자면 보기 힘든 작품들을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유명한 작품이라고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니까. 모네 특유의 반짝반짝하는 화려함이 한풀 죽고 부드럽개 뭉개진 텍스처와 따뜻한 색채가 강조된 이 작품, 포르비예의 센느강 역시, 아름다워서 한참 바라보았다.

심지어 1899-1901년 작 Charing Cross Bridge는 같은 이름의 그림이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온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가 없었고, 런던 국회의사당을 그린 Londres, le Parlement, les tours Westminster(1903) 아주 인상깊게 보았는데도 하도 비슷한 게 많아서 이번에 온 게 어떤 건지 솔직히 구분을 못하겠다. 그리고, 모네 답진 않았지만, 캔버스 가득 자잘한 푸른 잎과 가느다란 혈관같은 나뭇가지들이 뻗어있던 Les Bords de la Seine(세느강변. 1878)도 좋았고, Marine, Pourville(푸르빌의 해변. 1881) 역시 좋았다.

하지만 1914년(74세) 첫째 아들 쟝이 죽은 후부터 1924년 백내장 수술을 받기 전까지 모네의 그림에 나타난 붉은 피색과 헝클어진 스트로크는, 젊은 시절 세상의 아름다운 색조를 '발견하고' 그려냈던 모네가 그린 것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불편했다.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몸은 망가져 가장 좋아하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런 노년의 고난과 풍상을 생각지 않을 수 없어서, 불편했고 슬펐다. 집에 돌아와서 전시회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찾으면서, 그가 젊은 시절 혹독한 무명의 가난 속에서 그려낸 찬란한 색채의 그림들을 보면서, 전시회에서 보았던 그 헝클어진 정원이 생각나서 또 슬펐다.

나는 자연의 법칙과 조화 속에 그림을 그리고 생활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갈망하지 않는다.
- 모네. 1875년

누구에게든 일생에 빼어먹을 수 있는 절대치의 생명력, 혹은 영감 같은 것이 정해져 있고, 그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일 테지. 그러니 노년에 맞게 되는 고난이나 풍상을 불편해할 이유도, 슬퍼할 이유도 없다. 그는 그저, 나이가 들어서도, 눈이 안보여도, 그의 일생을 지배해온 무의식적인 행동을 계속하고 싶었던 것 뿐이고, 다른 욕심도 없었을 테니까. 다만 문제는 그 작품들이 물건너 이 한국까지 와서 전시관에 붙지 않도록 모질게 제재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 뿐이다.

* 그리고 초중등학교 선생님들, 애들한테 이런 전시 보고 숙제해오라고 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런 전시든 다른 전시든 애들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 것이고, 느껴봐야 얼마나 느끼겠나. 그것도 모네를. 알만한 애들도 있겠지만 그만한 애들은 부모님을 조르든 알바를 하든 가지 말래도 지가 알아서 간다. 아니면 알만한 애들만 엄선해서 티켓 사주고 보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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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립 미술관. 비가 오다 개다 반복했던 날.


이 보라색 꽃이 요즘 많이 보인다. 이름이 뭘까.

시청 앞. 광복절 기념 음악회

웬지 일본스럽게 변한 시청

골뱅이 파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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