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라따뚜이
2007 / 미국 / 애니메이션
★★★

우연히도, 지난번 요리에 관한 책 앗 뜨거워를 본 후 이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요리나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 요리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이 두 이야기를 연달아 보게 된 것이 사실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생쥐는 귀여웠고(몸의 움직임은 우리 방울이를, 표정과 말투와 제스처는 Friends의 로스를 닮았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파리의 밤과 아침은 너무도 상쾌하게 아름다워서, 파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외엔 뭐 그냥 그랬다. 지금까지 나온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표현 기술을 자랑한다기에 보러 갔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서 '와, 쥐털이 너무 리얼해'라든가 '음식이 진짜같네'라는 생각을 하진 않으니까(나는 심지어 영화에 나왔던 배경 음악들도 나중에 기억을 못한다). 요리를 좋아하거나 미식가인 사람들은 더 흥미있게 보거나 스토리에 더 공감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각과 후각이 민감하긴 하지만(별명이 개코) 거기서 큰 즐거움을 기대하진 않는다. 귀도 싸구려 귀라, 싸구려 MP3P나 카 오디오로 음악을 듣고도 막 감동하곤 한다. 정신적인 쾌락을 제외하고 순수히 오감 중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이라면 시각이 아닐까 싶은데, 그 중에서도 멋진 배색이나 특이한 텍스처 같은 것들에는 원초적인 흥분과 즐거움을 느낀다(엔딩 크레딧 괜찮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내가 진짜 맛있는 것을 못먹어봐서, 진짜 좋은 오디오로 못들어봐서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사람마다 오감 중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곳이 다 다를 텐데, 내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것들을 꼽으라면 음식은 그 축에 못 낀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절실히 깨달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빠 생쥐처럼 '음식은 연료일 뿐'이라고까지 생각지는 않지만, 지금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그에 관해 연구하거나 학습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입에 들어갈 것을 만드는데 복잡한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 싶지도 않다.

이전에 '돈은 그냥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되지 않나? 더있으면 그걸로 뭐하지?'라고 했더니, 어떤 분이 그랬다. 돈이 생기면 내가 지금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즐거움들을 알게 된다고.
다행이다. 싸구려 입과 귀를 가져서.
게다가 미각과 청각의 즐거움보다 시각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돈이 훨씬 덜 드니까.